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콜리어(Paul Collier)는 그의 신간 “Exodus: How Migration is Changing Our World(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세계의 이주민 상황을 ‘엑소더스(Exodus)’로 묘사하며, 이 ‘엑소더스’ 현상이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콜리어는 이주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잘못된 것이며, 어느 정도의 이주민 유입이 이주민을 맞아 들이는 국가와 사회에 유익을 끼칠 것이며, 누가 그 유익의 수혜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바른 논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콜리어는 자신의 책에서 이 두 가지의 질문을 이주민과 이주민의 출신국 그리고 이주민을 받는 국가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세계 이주 경로, 출처: The Economist]

이주는 이주민에게 유익을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이주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이주를 떠나는 이들은 먼저 부유한 나라의 수준에 해당하는 수입을 얻게 되는데, 이는 보통 모국보다 10배 이상이 많다. 이렇게 많은 수입을 얻게 되는 이주민들의 생산성은 모국에 있을 때보다 이주한 국가에서 상당히 높아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모국의 사회가 역기능적(dysfunctional)이기 때문이라고 콜리어는 설명했다.
이러한 콜리어의 분석은 아주 중요하다. 몇몇 산유 부국을 제외하면, 부유한 나라들은 잘 조직된 사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하고, 가난한 나라들은 그 사회 조직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의 공장 근로자들은 그들이 뉴질랜드에서 일할 때보다 더 적은 상품을 생산하는데 그 이유는 나이지리아 사회가 역기능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즉 나이지리아에서는 전력이 자주 끊기고, 부품이 제 시간이 도착하지 않으며, 공장 관리자들이 뇌물을 원하는 공무원들을 상대하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가 이주민을 받아 들일 때는 그 나라의 훌륭한 관리 제도와 법 질서에 따른 혜택이 이주민들에게도 미치는 것이다.
이주민을 받아 들인 나라들이 과거에는 이주민들에 의한 혜택을 보았지만 앞으로는 이주민들의 유입을 통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라고, 콜리어는 경고했다. 현재까지 이주민들은 이주한 나라의 원래 주민들이 해오던 일을 대치하기 보다는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서 노동 시장의 틈새를 메꾸어 왔다. 새로운 생각을 가진 새 엘리트들이 부유한 나라들의 회사에 들어 오면서 생산성은 높아졌고, 이는 부유한 나라의 주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낮은 기술 수준을 가진 원래 주민들의 수입은 오히려 감소하였는데, 이런 이들의 수는 아주 적었다
그러나 대규모 이민자들의 유입은 부유한 나라의 문화적 유대에 위협으로 다가왔다. 다양성이 불투명한 정체성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주류 문화를 받아 들이지 않는 큰 규모의 이민자들은 그들 모국의 역기능적인 문화적 규범을 버리지 않는 것을 넘어 새로운 국가에 그 규범을 전파했다. 한 사회가 너무 많은 다양성을 가질 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복지를 위한 지출을 꺼릴 수 있다. 세금을 내는 자들이 세금에 의한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부의 재분배에 대한 지지는 감소할 것이다.
콜리어는 이주민들을 보낸 가난한 나라들에게도 시선을 집중했다.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즉 해외로 나간 자들이 그들의 기술과 노동을 대가로 모국 사회는 송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은 주민들을 자극하여 기술을 연마하거나 공부에 매진하도록 만들었고 해외로 가지 못한 자들 중에도 훌륭한 두뇌와 기술을 가진 자들이 있어 자국의 사회와 경제에 유익이 되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고급 두뇌들이 해외로 유출되면 자국의 경제는 오히려 더 나빠지게 된다. 중국, 인도, 브라질과 같은 인구가 많은 신흥 경제 발전 국가들은 자국민의 해외 이주로 인해 유익을 얻지만, 인구 규모가 작고 아주 가난한 나라들은 그렇지 못했다. 중남미 섬나라 아이티(Haiti)에서는 교육 받은 이들의 85%가 해외로 떠났다.
과거의 이주 물결이 이주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콜리어는 주장했다. 자국민들이 많이 정착한 지역으로 이주를 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자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일자리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많은 서양 국가들이 친척의 이민을 허용하여 왔다. 현지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이주민들이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 졌다고, 콜리어는 설명했다.
콜리어의 주장은 분명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콜리어가 살고 있는 영국에는 인구의 90%가 백인이지만, 최근 많은 이민자가 유입되었다. 이러한 나라에 살고 있는 주민의 한 사람인 콜리어는 이주자들에 의한 과거의 현상보다는 미래에 발생할 사건에 더 집중하였다. 하지만 그 전망이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니다. 영국이 이주민들에 의한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영국에서 가장 다양한 지역인 런던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런던은 전체 주민의 절반 이하가 백인일 정도로 인종적으로 다양한 지역이면서 동시에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며, 백인들만 넘쳐나는 다른 지역보다 더 활력적인 곳이다.
미국은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이주민과 이주민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부유하고, 역동적이며, 평화롭고, 강력한 국가적 자긍심으로 뭉쳐 있다. 과거 미국으로 들어왔던 대규모 이주민들이 모두 주류 문화에 동화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전망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있었던 최근의 대규모 이주민 유입도 번영과 사회적 통합의 사례로 평가 받았다.
대규모 이주민 유입과 복지 사회 사이에는 분명히 갈등이 있다. 보조금에 의지할 이주민들을 받아 들이는 나라는 그 부를 오래 동안 유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이주민들이 유럽의 이주민들보다 더 동화되는 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사회 보장 제도가 유럽보다 덜 관대하다는 데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멀쩡한 신체를 가진 이주민들이 보조금과 기부금으로 살아 갈 수 있는데, 이러한 사례가 현지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미국에서는 이주민들이 일을 해야 하며, 또 실제로 일을 했다. 일을 통해 미국의 이주민들은 사회에 통합되어 갔다.
유럽식 복지 제도에 근거한 콜리어의 입장은 이민 정책을 통해 이민자들로 인한 사회 문제를 감소시키되 이민 자체는 막지 말자는 것이다. 즉 그는 이주자들이 사회에 동화되는 정도를 보며 이주자의 유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술을 가진 이주민과 학생은 환영하지만 가족 초청 이민은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또한 전쟁에 의한 정치적 망명자는 받아들이지만 전쟁이 그치면 본국으로 돌려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본국 송환이 망명자의 고국에 유익하다고 콜리어는 주장했다. 그리고 불법 체류 이주민들에게는 세금을 내는 합법적 노동자의 신분을 주지만 복지 혜택에는 제한을 가하거나, 받을 자격을 주지 말자고 콜리어는 제시했다.
책 제목에서 이주민의 유입을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단어인 “엑소더스”로 묘사한 콜리어는, 지금까지 통제되지 않은 이주민의 유입을 허락한 나라는 없었으며, 또 무조건적인 이주민 유입이 적합한 현상도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주민에 대한 통제를 바탕으로 한 이민 정책을 역설했다.

(출처: The Economist, 2013년 9월 28일,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2.0 2014년 1월호)